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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치'라는 말은 사전에 나오지 않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심심치 않게 쓰였다. '오직 하나에만 빠져 모든 걸 내던지는 병적인 상태'를 말한다. 요샛말로 바꾸면 마니아, 오덕후, 외골수를 뜻한다. 벽치는 유전자에 새겨진 헤어나올 수 없는 운명과 같다. 세상살이에 서툴고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상식에 아랑곳하지 않는 광신의 에너지가 담겨 있다.
정조는 명말청초의 소설(패관문학)에 빠져드는 일을 벽치로 여겨 벌을 내렸다. 물건에 정신을 빼앗기면 본뜻을 잃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김조순과 이상황이 당직을 서면서 패관문학을 읽어 파직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나아가 정조는 소설을 모아 불태웠으며 서적 수입까지 막았으니 꽤나 문화적 원리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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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치광작(癖痴狂作) 전시가 2026년 3월 31일까지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린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쳐야 미칠 수 있다는 수집광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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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안현정 학예사 관람객들에게 힘차고 낭랑한 목소리로 전시를 안내한다.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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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수집에 눈멀고 미치다
허먼 스트래커(1836~1901)는 미국의 풀벌레 벽치다. 한평생 나비 떼 수집에 온 힘을 쏟아 놀라운 컬렉션을 얻었지만 학계의 비판과 도벽 논란을 안고 살았다.
허먼은 아버지를 따라 12세부터 묘비명을 새기고 천사 모습을 조각하는 일로 돈벌이를 국민은행 공인인증서 했다. 20세에는 가업을 물려받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진다. 스트래커는 죽음을 기록하던 일상에서 영혼의 부활을 뜻하는 나비를 만나자마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틈 날 때마다 필라델피아 자연과학 도서관을 드나들며 홀로 나비목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그이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다. 진흙 묻은 신발을 벗지도 않고 바로 매트리스에 엎어져 잠이 들 인천실매물 었다. 낮에는 망치로 돌을 두드리고 밤에는 핀셋으로 나방의 날개를 반듯하게 폈다. '나비 별종(Butterfly Man)'은 허먼의 광기를 마주한 이웃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30대를 넘기며 스트래커는 나비목 학자를 위한 분기별 간행물을 펼쳐낸다. 1872~1878년까지 15부의 분책으로 출판했다. 발행을 위해 구독자를 모으고 표본을 팔았으며 광고를 실어 비용을 메꾸는 방식이다. 당시에는 분량이 많거나 값비싼 전문 서적은 나눠서 출간하는게 흔한 일이었다. 그는 채색가 에밀리 모튼의 도움으로 <낮나비와 밤나비, 토착 및 외래종에 대한 설명과 채색 삽화>(Lepidoptera Rhopaloceres and Heteroceres, Indigenous and Exotic)를 성공적으로 펴낸다.
▲ 6년간 15회의 분책으로 발행하다 마지막에 한 권으로 엮었다. 허먼 스트래커의 글과 삽화에 에밀리 모튼이 채색을 담당했다.
ⓒ InternetArchive
제 잘난 멋에 살았던 벽치
외국어를 잘했던 스트래커는 곤충을 사고팔면서 1500명에 이르는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키워낸다. 그는 이름난 학자와 수집가 및 법인과 표본을 거래하거나 맞바꿨다. 러시아 로마노프 황실의 니콜라스 대공과는 10년 넘게 편지를 주고 받았다. 황실의 괴짜로 불렸던 그는 9권짜리 나비목 연구서(Mémoires sur les Lépidoptères)를 펴낸 인물이기도 하다.
허먼이 40여 년간 그러모은 나비 무리 20만 점은 그의 삶 자체였다. 이 컬렉션에는 300여 종의 신종이 들어있어 20세기 나비목 연구에서 귀중한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일생 동안 수집에 쓴 돈만 3만 달러였으니 현재 가치로 바꾸면 약 15억 원 수준이다. 로스차일드 컬렉션이 나오기 전까지 한 개인의 수집물로서는 최대이자 최고였다. (관련기사 : 박물관에 눈먼 은행 재벌이 50년간 벌인 기막힌 일)
놀라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허먼 스트레커는 속임수와 도벽을 일삼았다. 그는 곤충학회의 일원이면서 개인적인 감정을 실어 동료들을 조롱하기 일쑤였다. 학술적인 연구 보다는 수집과 기록의 완성을 가장 우선했기 때문이다. 더우기 출판물을 통해 다른 학자들의 실적을 공개적으로 깎아내렸다. 결국 많은 사람의 미움을 샀고 수집가와 학계의 네트워크는 허먼을 멀리했다.
무엇보다 스트래커는 1880년 논문 발표 일자를 속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신뢰를 잃었다. 신종 명명에 대한 우선권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자(William Henry Edwards)보다 발견 시점을 앞당겨 적었다. 심지어 그는 도둑질도 서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수집품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귀한 표본을 중절모 속에 숨겨 빠져나오곤 했다. 들키지만 않았을 뿐 여러 수집가들이 똑같은 말을 했기에 도벽 의혹은 사실로 굳어졌다. 스트래커의 악명이 높아지면서 여러 박물관에서 그의 출입을 금지시켰으니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다.
제 잘난 맛에 살았던 벽치이자 비주류 곤충학자 허먼 스트래커는 54세이던 1890년 '프랭클린 앤 마셜 칼리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아 뒤늦게 공로를 인정 받는다. 아울러 그의 수집품은 1908년 시카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에서 사들여 영원한 기록으로 남았다.
19세기 미국 자연사는 스트래커를 비롯한 5명의 벽치들이 날선 다툼을 벌였던 시기다. 외골수들의 논쟁을 통해 뜻밖에도 곤충학과 분류학이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윌리엄 리치가 쓴 외서 <나비 사람들: 세계의 아름다움과 마주한 미국의 경험>(Butterfly People: An American Encounter with the Beauty of the World)에서 당대 자연과학의 진화를 생동감 있게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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