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와 함께, 진정한 만남이 시작된다
페이지 정보
하재린운 0 Comments 1 Views 25-11-13 22:50본문
바로가기 go !! 바로가기 go !!
비아그라와 함께, 진정한 만남이 시작된다
1. 만남이 끝이 아닌 시작이 되려면
우리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과 연애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만남의 시작은 성적인 관계로 이어지는 깊은 유대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성적인 만남은 두 사람 간의 친밀감과 신뢰를 쌓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그 순간의 만족감이 서로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남성들이 성적인 문제로 인해 그 시작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발기부전ED은 그 중 하나로, 이는 성적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발기부전을 겪고 있는 남성들은 성적 자극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해, 관계에서의 자신감을 잃고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그 결과, 연인과의 관계가 불완전하거나 위축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바로 비아그라라는 약물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비아그라는 성적인 자극에 대한 반응을 개선하고, 성적 능력을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럼 이제 비아그라가 어떻게 남성들의 성적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만남을 시작할 수 있게 돕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2. 비아그라의 작용 원리
비아그라는 PDE5 억제제라는 약물로, 발기부전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약물입니다. 성적 자극이 있을 때 음경으로 가는 혈액의 흐름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혈액이 음경으로 더 많이 유입되면, 발기가 촉진되며 이를 통해 성관계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비아그라는 성적 자극에 대한 반응을 활성화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즉, 비아그라를 복용한다고 해서 자신의 성적 욕구가 즉시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성적 자극이 있을 때만 그 효과가 나타나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고 강한 발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비아그라는 보통 30분에서 1시간 내에 효과를 발휘하며, 그 효과는 4시간에서 6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이 기간 동안, 성적 활동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성적 능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증상을 겪고 있는 남성들에게 효과적인 해결책이 됩니다.
3. 전문가의 추천비아그라의 안전한 사용법
비아그라는 전문가의 처방을 받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비아그라는 모든 남성에게 적합한 약물이 아니므로, 자신에게 맞는 처방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문가는 개인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적절한 복용량을 결정하며, 이를 통해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일반적으로 비아그라는 성관계 30분에서 1시간 전에 복용합니다. 복용량은 보통 50mg에서 시작하며, 필요에 따라 100mg까지 증량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만 복용하는 것이 원칙이며, 고지방 식사 후 복용 시 흡수율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복 상태에서 복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비아그라는 건강한 남성에게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으나, 심혈관 질환이나 약물 복용 중인 경우에는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 후 사용해야 합니다. 비아그라는 모든 연령대의 남성들에게 효과적일 수 있지만, 개인적인 건강 상태에 맞는 처방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4. 비아그라가 가져오는 변화관계의 질을 높이다
비아그라의 가장 큰 장점은 발기부전을 극복하고, 성적 능력을 회복시켜 준다는 점입니다. 성적인 문제는 단순히 신체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적 문제로 고민하던 남성들은 대개 자신감을 상실하고, 이로 인해 관계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불안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리적인 부담으로 작용하며, 관계의 질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하지만 비아그라는 자신감을 회복시킬 수 있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비아그라를 복용함으로써, 남성들은 자신의 성적 능력을 되찾고, 성적 활동에 대한 불안을 덜어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성적 만족감도 증가하게 됩니다. 연인 간의 성적인 친밀감과 감정적 유대가 강화되며, 결과적으로 관계의 질도 향상됩니다.
5. 비아그라의 효과적인 사용법더 나은 성적 경험을 위해
비아그라는 성적 자극에 대한 반응을 활성화시켜 강한 발기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비아그라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성적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성적인 자극과 심리적인 준비입니다. 비아그라는 성적 자극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며, 성적인 환경과 감정적 연결이 중요합니다.
비아그라를 사용하면 성적 자극에 대한 반응이 개선되어, 관계를 더욱 원활하고 즐겁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비아그라는 성적인 건강을 지원하며, 이를 통해 성적 만족감을 얻고 자신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비아그라를 사용할 때에는 건강한 생활 습관도 함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는 비아그라의 효과를 더욱 증대시킬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와 자신감을 갖는 것도 성적 능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비아그라는 단순히 약물을 통한 해결책이 아니라, 건강한 생활 습관과 함께 사용할 때 더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6. 비아그라 사용 후 변화하는 삶의 질
발기부전은 남성에게 자신감 저하와 심리적 부담을 주는 질환입니다. 성적인 문제를 극복한 후, 남성들은 자신감을 되찾고, 성적 만족감을 높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성적인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자신감을 회복한 남성들은 일상 생활에서도 더 활기차고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며, 전반적인 삶의 질이 향상됩니다.
비아그라는 성적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자신감과 행복감을 회복시키며, 이로 인해 관계의 질이 향상되고, 더 나은 성적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비아그라는 성적인 불안감을 없애고, 만족스러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7. 결론진짜 만남의 시작, 비아그라와 함께
비아그라는 이제 발기부전 극복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적 능력을 회복하고,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는 중요한 치료제로, 많은 남성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비아그라는 단순히 성적 문제를 해결하는 약물이 아니라, 진정한 만남과 관계의 시작을 돕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비아그라와 함께, 진정한 만남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회복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이어가는 데 비아그라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이데나 장점은 빠른 작용 속도와 자연스러운 강직도 유지에 있습니다. 특히 부작용이 비교적 적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선호하며,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자이데나 구입방법은 약국 방문 또는 전문가 상담을 통해 정품을 안전하게 구매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인터넷 구매 시에는 반드시 정품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최근 관심이 높은 자이데나 200mg 가격은 용량이 높은 만큼 가격대도 다소 높게 형성되어 있지만, 장시간 효과를 기대하는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만족도가 높습니다.
실제 자이데나 200mg 후기를 보면 자신감이 생겼다, 효과가 오래가서 만족스럽다는 반응이 많으며, 용량이 높은 만큼 복용 전 하나약국 전문가와의 상담이 꼭 필요합니다.
기자 admin@gamemong.info
라인홀트 메스너.
"등반에는 죽음이 도사려야 합니다. 옛날 우리들은 이걸 모두 알고 있었어요."
제1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열렸던 2016년, 산악인 김영도 선생은 '라인홀트 메스너가 온다'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며 엄청난 기대감을 내비친 바 있다. 막상 영화제 중 그와 대면했을 때 데면데면한 반응을 보이자 재차 기고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왔다 갔다'는 칼럼에서 다소 서운하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이내 그를 '250년 알피니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산악인'이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바다이야기사이트 라인홀트 메스너는 누구인가. 에베레스트 무산소 초등자이자 히말라야 14좌 최초 완등자란 업적은 늘 가장 잘 '팔리는' 말이라 먼저 온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야 한국 산악계, 더 나아가 세계 산악계에 그가 끼친 지대한 영향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불가능하다고 일컬어졌던 8,000m 이상 죽음의 지대를 무산소로 등반하고, 위험하다는 단독 등 황금성사이트 정이나 연속 고봉 등반 등을 해낸 것은 단순히 어려운 걸 해냈다 정도의 성취가 아니다. 장비는 최소한으로만 사용하며, 인간의 정신력과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을 해야 한다는 알피니즘의 방향성을 제시한 데 그 의의가 있다. 등정만을 위해 전동 드릴로 볼트를 박는 등 도전의 질을 쉽게 만들 것이 아니라, 정상까지 이어지는 길과 과정을 불가능에 가깝도록 어렵 야마토게임연타 게 만들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모험이자 등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수십여 권의 책을 통해서 국내에 소개되며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줬다. 꼭 고산등반이나 암벽등반을 즐기지 않더라도 메스너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메스너가 다시 왔다. 이번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산악문화상을 알라딘릴게임 수상했기 때문이다. <스틸 얼라이브>, <에베레스트–최후의 한 걸음>과 같은 기존 출연 및 감독작도 덩달아 재상영됐다. 10년 만에 다시 내한한 메스너는, 그리고 그의 철학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중 <에베레스트–최후의 한 걸음>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눈 메스너와의 대담을 재구성해 본다. 영화는 1978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초등 당시를 다룬다.
바다신2릴게임
영화 '에베레스트 - 최후의 한 걸음'에서 볼 수 있는 1978년 에베레스트 초등의 순간들.
메스너는 영화 시작 전 한마디 하고 싶다며 무대에 올랐다. 1978년 피터 하벨러와 함께 등반하며 직접 촬영한 영상이 포함됐다는 것, 당시에는 지금보다 에베레스트 등반이 훨씬 더 어려웠다는 것, 그 이유는 매일매일 폭풍이 있었고 날씨 정보가 예측 불가능했다는 것, 중간에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찍은 영상은 동상에 걸린 카메라맨 대신 본인이 촬영한 것이라는 등의 정보를 간단히 읊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아마도 그는 영상에서 표현된 것보다 얼마나 이 도전이 위험하고 불확실했던 것인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난 후 다시 메스너가 무대에 오른다. 관람객들의 시선이 뜨겁다. 10년 전에는 흠모의 눈길이었다면, 지금은 열망의 눈빛이다. 침체기를 겪고 있는 한국 알피니즘과 산악계에 어떤 돌파구가 될 만한 말을 해주지 않을까란 기대감이 가득 차 있다.
등반이란 야생에서 고독을 감당하는 것
"먼저 영화 얘길 해볼까요. 2018년에 제작됐던 영화라 오랜만에 보셨을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아쉬운 점이나 그런 건 있을까요?"
"영화는 바꿀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아쉬움은 없습니다. 기본 골격이 된 영상도 1978년에 리오 디킨슨 촬영감독이 촬영한 것이라 다시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다만 오늘날의 에베레스트 등반의 모습을 같이 넣어줘도 재밌을 것 같네요. 아주 우습겠죠."
말끝에 묻어나오는 약간의 조소. 메스너가 하고 싶은 얘긴 이거다. 오늘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길목인 사우스콜에는 수백 명의 등반가가 줄을 길게 서서 오른다. 이로 인해 등반이 지연돼 사망사고도 비일비재하다. 날씨 정보가 너무 명확한지라 대부분 정상공격 날짜를 같은 날로 잡아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메스너가 등반할 땐, 날씨 정보도 불명확했고, 무산소로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으며, 셰르파가 동행하지도 않았다.
영화 '에베레스트 - 최후의 한 걸음'에서 볼 수 있는 1978년 에베레스트 초등의 순간들.
"우리가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와 현재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등반가들은 정신무장상태 자체가 다릅니다. 50년 전에는 장비, 기술이 지금보다 현저히 떨어졌어요. 고어텍스도 없었고, 일기예보도 없었죠. 지금 에베레스트는 정상까지 인프라가 구축돼 있습니다. 장비도 많고, 굉장한 등반 실력을 보유한 셰르파들도 넘쳐나죠."
그래서 그는 현재의 에베레스트 등반을 등반이 아닌 관광으로 보는 듯했다. 이어 "등반이란 야생으로 가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고독을 감당하는 것. 고독과 추위 속에서 무한해지는 세계를 경험하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신 상태가 달랐다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그때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플랜B조차 마련하지 않았어요. 저와 하벨러는 '일단 가서 몸을 던지자, 시도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또 적당히 하다가 후퇴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우리는 분명히 후퇴했을 거예요. 하지만 정신력으로 그런 마음이 들지 않도록 지워 놨죠. 또 등반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지워 놨고요. 그렇게 한 걸음씩 올라가야 최후의 한 발, 라스트 스텝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거죠."
이미 당시에도 몇 셰르파들은 8,000m 죽음의 지대 근처까지는 무산소로 왔다 갔다 하며 루트개척을 하곤 했기에 정보도 충분했다. 그래서 메스너는 갈 수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이 현실이 되게 만들었다.
영화 '에베레스트 - 최후의 한 걸음'에서 볼 수 있는 1978년 에베레스트 초등의 순간들.
이젠 '철인'보다 '자연의 선생님'
한편 10년 전과 메스너가 달라진 점은 하나 있다. 일절의 타협 없는 알피니즘을 내세우는 철인이란 별명보다 '자연의 선생님'으로 불리고 싶다는 산악인이 됐다. 이를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통해 최근까지 여러 박물관을 짓고 있다. 산악인의 정신과 등반 유산을 보존하고 산악 문화를 전파한다는 취지다.
"또한 낭가파르바트 지역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디아미르 밸리 같은 히말라야 오지에 학교를 지었죠. 고산지대 아이들은 고향에서 살 수 없는 실정입니다. 식량이 부족해서 도시로 나가야만 생존할 수 있어요. 하지만 교육을 받지 않고 도시로 나가봤자 제대로 일거리를 찾을 수 없죠. 그럼 고산지대에 갇혀 빈곤한 삶을 되풀이해야 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됩니다. 30년 전부터 해온 일이죠."
최근에는 셰르파들을 위한 지원도 하고 있다. 1,500~2,000m급 산간지대에 힐러리 재단과 힘을 합쳐 병원을 지었다. 셰르파 박물관도 솔루쿰부에 지었다. 이 박물관을 통해 그들의 역사를 재조명하면서 그간 산악사에서 그들이 응당 받았어야 할 인정을 받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메스너 재단은 제가 죽더라도 이어집니다. 제 아내가 맡을 예정이에요. 지금도 몇 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아내에게 현지의 학교를 보여 주기 위해 한국을 떠나 고국 이탈리아로 돌아갈 때 파키스탄을 잠깐 들를 예정이기도 하고요."
엄홍길 대장이 내한한 메스너에게 기념 그림을 전달하고 있다.
알피니즘에서 위험성을 빼려는 건 잘못
그에게 한국의 등반에 대해 묻고 싶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등산허가제를 비롯해서 우리 사회는 갈수록 모험과 도전은 금기시하고 안전을 강조하는 사회 풍토가 형성되고 있다. 산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인터넷 댓글을 통해 철저한 조롱을 받는다.
"사람들이 전혀 이해를 잘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산악인들은 등반에 죽음이 포함돼 있다는 걸 모두 받아들이고 있었어요. 지금은 산악계 스스로도 등반에서 죽음을 빼려고 하고 있죠. 등반, 그리고 알피니즘은 야생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으려는 총체적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메스너는 철저하게 등반과 관광을 구분했다. 그 기준은 위험이다. 등반에는 당연히 위험이 내재돼야 한다고 했으며, 반대로 관광에는 당연히 위험이 따르면 안 된다고 단언했다. 이 두 개념이 공존하는 산악 행위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실상 행위의 내용이 관광인데, 이를 등반을 한 것처럼 위장하는 이들을 가증스러워하는 듯했다. 또 등반가들에게는 "등반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패하거나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질문을 잇는다.
"알피니즘에서 위험이란 요소는 당연히 있는 것이고 빼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런 시도의 일환 중 하나로 이런 것이 있습니다. 장거리 종주들이죠. 작게는 트레일러닝에서 크게는 사막이나 극점 같은 곳에서 수백~수천km를 걷고 달리는 모험으로 전환하는 산악인들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모험마다 각자 특징이 있어요. 얼핏 보기엔 위험하지 않아 보일 순 있어도 그런 모험에도 다 굉장한 위험성이 내재돼 있습니다. 저의 경우 고비사막과 남극을 일주한 적이 있죠. 고비사막은 물이 없다는 위험이 대표적이죠. 저도 사막의 부족민들과 방랑자들에게 물을 얻어먹어서 간신히 생존할 수 있었어요. 남극은 영하 40℃의 세계죠. 그런 날씨와 조건 속에 최소 3개월은 맨 몸으로 던져지는 겁니다. 위험하죠. 저는 수직의 등반도, 수평의 종주도 모두 해본 끝에 지금은 모험이라는 개념을 '생존하는 예술'이라 정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10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산악문화상을 수상한 메스너.
케이블카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또 다른 관심사가 있었다. 케이블카다. 흥미롭게도 메스너는 10년 전에도 같은 질문을 받았었다. 질문은 "산에 케이블카를 놓는 것을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다. 당시에는 "산의 아주 작은 부분만 관광으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산악인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답했다. 지금도 거의 같은 논리지만, 약간은 어구가 달라졌다.
"제 고향에는 케이블카가 이미 수백 개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걸 설치하는 장소의 특성이 관건이니 민주적으로 상의해서 결정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1개를 놓을지, 10개를 놓을지, 아니면 아예 안 할지 말이죠. 무조건 산에 케이블카 놓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깔끔하게 사람을 산 위로 올려 보내주죠. 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큰 도움을 줍니다. 케이블카가 있어 관광하기 좋은 산이나, 케이블카가 없어 등반하기 좋은 산이나 둘 다 좋은 겁니다. 다만 명확한 구분은 필요해요. 케이블카는 분명 모험할 기회를 파괴합니다. 관광이 있는 산에선 모험을 할 수 없고, 모험을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 산에는 관광객의 접근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는 모든 질문에 거침없이 답했다. 그의 등반기나 영상을 봐도 그렇다. 그는 등반이 당연히 위험하고 죽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전혀 위험하지 않고 죽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처럼 산을 오른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등반할 때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타입인가요? 아니면 특별한 마인드컨트롤 방법이 있는 겁니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포라는 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용기의 다른 면이죠. 중요한 건 밸런스입니다. 두 감정이 정확히 맞춰져야 모험을 할 수 있어요. 만약 두려움이 더 크다면 작은 산으로 가야죠. 또 반대로 용기만 너무 크다면 만용의 대가를 치를 공산이 큰 것이고요.
저 역시 두려움이 더 컸던 모험이 있었습니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결국 설맹에 걸려 크게 위험할 뻔 했죠.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엄청난 공포심에 휩싸였었습니다. 그나마 근처에 다른 대원들이 있어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었죠. 두려움과 용기를 모두 정확히 가져야 훌륭한 알피니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등반에는 죽음이 도사려야 합니다. 옛날 우리들은 이걸 모두 알고 있었어요."
제1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열렸던 2016년, 산악인 김영도 선생은 '라인홀트 메스너가 온다'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하며 엄청난 기대감을 내비친 바 있다. 막상 영화제 중 그와 대면했을 때 데면데면한 반응을 보이자 재차 기고한 '라인홀트 메스너가 왔다 갔다'는 칼럼에서 다소 서운하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이내 그를 '250년 알피니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산악인'이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바다이야기사이트 라인홀트 메스너는 누구인가. 에베레스트 무산소 초등자이자 히말라야 14좌 최초 완등자란 업적은 늘 가장 잘 '팔리는' 말이라 먼저 온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야 한국 산악계, 더 나아가 세계 산악계에 그가 끼친 지대한 영향에 대해 잘 알 수 있다. 불가능하다고 일컬어졌던 8,000m 이상 죽음의 지대를 무산소로 등반하고, 위험하다는 단독 등 황금성사이트 정이나 연속 고봉 등반 등을 해낸 것은 단순히 어려운 걸 해냈다 정도의 성취가 아니다. 장비는 최소한으로만 사용하며, 인간의 정신력과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도전을 해야 한다는 알피니즘의 방향성을 제시한 데 그 의의가 있다. 등정만을 위해 전동 드릴로 볼트를 박는 등 도전의 질을 쉽게 만들 것이 아니라, 정상까지 이어지는 길과 과정을 불가능에 가깝도록 어렵 야마토게임연타 게 만들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진정한 모험이자 등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수십여 권의 책을 통해서 국내에 소개되며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줬다. 꼭 고산등반이나 암벽등반을 즐기지 않더라도 메스너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메스너가 다시 왔다. 이번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산악문화상을 알라딘릴게임 수상했기 때문이다. <스틸 얼라이브>, <에베레스트–최후의 한 걸음>과 같은 기존 출연 및 감독작도 덩달아 재상영됐다. 10년 만에 다시 내한한 메스너는, 그리고 그의 철학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중 <에베레스트–최후의 한 걸음>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눈 메스너와의 대담을 재구성해 본다. 영화는 1978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초등 당시를 다룬다.
바다신2릴게임
영화 '에베레스트 - 최후의 한 걸음'에서 볼 수 있는 1978년 에베레스트 초등의 순간들.
메스너는 영화 시작 전 한마디 하고 싶다며 무대에 올랐다. 1978년 피터 하벨러와 함께 등반하며 직접 촬영한 영상이 포함됐다는 것, 당시에는 지금보다 에베레스트 등반이 훨씬 더 어려웠다는 것, 그 이유는 매일매일 폭풍이 있었고 날씨 정보가 예측 불가능했다는 것, 중간에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찍은 영상은 동상에 걸린 카메라맨 대신 본인이 촬영한 것이라는 등의 정보를 간단히 읊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아마도 그는 영상에서 표현된 것보다 얼마나 이 도전이 위험하고 불확실했던 것인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난 후 다시 메스너가 무대에 오른다. 관람객들의 시선이 뜨겁다. 10년 전에는 흠모의 눈길이었다면, 지금은 열망의 눈빛이다. 침체기를 겪고 있는 한국 알피니즘과 산악계에 어떤 돌파구가 될 만한 말을 해주지 않을까란 기대감이 가득 차 있다.
등반이란 야생에서 고독을 감당하는 것
"먼저 영화 얘길 해볼까요. 2018년에 제작됐던 영화라 오랜만에 보셨을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아쉬운 점이나 그런 건 있을까요?"
"영화는 바꿀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아쉬움은 없습니다. 기본 골격이 된 영상도 1978년에 리오 디킨슨 촬영감독이 촬영한 것이라 다시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다만 오늘날의 에베레스트 등반의 모습을 같이 넣어줘도 재밌을 것 같네요. 아주 우습겠죠."
말끝에 묻어나오는 약간의 조소. 메스너가 하고 싶은 얘긴 이거다. 오늘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길목인 사우스콜에는 수백 명의 등반가가 줄을 길게 서서 오른다. 이로 인해 등반이 지연돼 사망사고도 비일비재하다. 날씨 정보가 너무 명확한지라 대부분 정상공격 날짜를 같은 날로 잡아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메스너가 등반할 땐, 날씨 정보도 불명확했고, 무산소로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으며, 셰르파가 동행하지도 않았다.
영화 '에베레스트 - 최후의 한 걸음'에서 볼 수 있는 1978년 에베레스트 초등의 순간들.
"우리가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와 현재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등반가들은 정신무장상태 자체가 다릅니다. 50년 전에는 장비, 기술이 지금보다 현저히 떨어졌어요. 고어텍스도 없었고, 일기예보도 없었죠. 지금 에베레스트는 정상까지 인프라가 구축돼 있습니다. 장비도 많고, 굉장한 등반 실력을 보유한 셰르파들도 넘쳐나죠."
그래서 그는 현재의 에베레스트 등반을 등반이 아닌 관광으로 보는 듯했다. 이어 "등반이란 야생으로 가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고독을 감당하는 것. 고독과 추위 속에서 무한해지는 세계를 경험하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신 상태가 달랐다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그때 어떤 마음이었습니까?"
"플랜B조차 마련하지 않았어요. 저와 하벨러는 '일단 가서 몸을 던지자, 시도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또 적당히 하다가 후퇴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우리는 분명히 후퇴했을 거예요. 하지만 정신력으로 그런 마음이 들지 않도록 지워 놨죠. 또 등반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지워 놨고요. 그렇게 한 걸음씩 올라가야 최후의 한 발, 라스트 스텝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거죠."
이미 당시에도 몇 셰르파들은 8,000m 죽음의 지대 근처까지는 무산소로 왔다 갔다 하며 루트개척을 하곤 했기에 정보도 충분했다. 그래서 메스너는 갈 수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이 현실이 되게 만들었다.
영화 '에베레스트 - 최후의 한 걸음'에서 볼 수 있는 1978년 에베레스트 초등의 순간들.
이젠 '철인'보다 '자연의 선생님'
한편 10년 전과 메스너가 달라진 점은 하나 있다. 일절의 타협 없는 알피니즘을 내세우는 철인이란 별명보다 '자연의 선생님'으로 불리고 싶다는 산악인이 됐다. 이를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통해 최근까지 여러 박물관을 짓고 있다. 산악인의 정신과 등반 유산을 보존하고 산악 문화를 전파한다는 취지다.
"또한 낭가파르바트 지역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디아미르 밸리 같은 히말라야 오지에 학교를 지었죠. 고산지대 아이들은 고향에서 살 수 없는 실정입니다. 식량이 부족해서 도시로 나가야만 생존할 수 있어요. 하지만 교육을 받지 않고 도시로 나가봤자 제대로 일거리를 찾을 수 없죠. 그럼 고산지대에 갇혀 빈곤한 삶을 되풀이해야 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게 됩니다. 30년 전부터 해온 일이죠."
최근에는 셰르파들을 위한 지원도 하고 있다. 1,500~2,000m급 산간지대에 힐러리 재단과 힘을 합쳐 병원을 지었다. 셰르파 박물관도 솔루쿰부에 지었다. 이 박물관을 통해 그들의 역사를 재조명하면서 그간 산악사에서 그들이 응당 받았어야 할 인정을 받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메스너 재단은 제가 죽더라도 이어집니다. 제 아내가 맡을 예정이에요. 지금도 몇 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아내에게 현지의 학교를 보여 주기 위해 한국을 떠나 고국 이탈리아로 돌아갈 때 파키스탄을 잠깐 들를 예정이기도 하고요."
엄홍길 대장이 내한한 메스너에게 기념 그림을 전달하고 있다.
알피니즘에서 위험성을 빼려는 건 잘못
그에게 한국의 등반에 대해 묻고 싶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등산허가제를 비롯해서 우리 사회는 갈수록 모험과 도전은 금기시하고 안전을 강조하는 사회 풍토가 형성되고 있다. 산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인터넷 댓글을 통해 철저한 조롱을 받는다.
"사람들이 전혀 이해를 잘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 산악인들은 등반에 죽음이 포함돼 있다는 걸 모두 받아들이고 있었어요. 지금은 산악계 스스로도 등반에서 죽음을 빼려고 하고 있죠. 등반, 그리고 알피니즘은 야생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으려는 총체적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메스너는 철저하게 등반과 관광을 구분했다. 그 기준은 위험이다. 등반에는 당연히 위험이 내재돼야 한다고 했으며, 반대로 관광에는 당연히 위험이 따르면 안 된다고 단언했다. 이 두 개념이 공존하는 산악 행위는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실상 행위의 내용이 관광인데, 이를 등반을 한 것처럼 위장하는 이들을 가증스러워하는 듯했다. 또 등반가들에게는 "등반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패하거나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질문을 잇는다.
"알피니즘에서 위험이란 요소는 당연히 있는 것이고 빼려고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런 시도의 일환 중 하나로 이런 것이 있습니다. 장거리 종주들이죠. 작게는 트레일러닝에서 크게는 사막이나 극점 같은 곳에서 수백~수천km를 걷고 달리는 모험으로 전환하는 산악인들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모험마다 각자 특징이 있어요. 얼핏 보기엔 위험하지 않아 보일 순 있어도 그런 모험에도 다 굉장한 위험성이 내재돼 있습니다. 저의 경우 고비사막과 남극을 일주한 적이 있죠. 고비사막은 물이 없다는 위험이 대표적이죠. 저도 사막의 부족민들과 방랑자들에게 물을 얻어먹어서 간신히 생존할 수 있었어요. 남극은 영하 40℃의 세계죠. 그런 날씨와 조건 속에 최소 3개월은 맨 몸으로 던져지는 겁니다. 위험하죠. 저는 수직의 등반도, 수평의 종주도 모두 해본 끝에 지금은 모험이라는 개념을 '생존하는 예술'이라 정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제10회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서 산악문화상을 수상한 메스너.
케이블카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또 다른 관심사가 있었다. 케이블카다. 흥미롭게도 메스너는 10년 전에도 같은 질문을 받았었다. 질문은 "산에 케이블카를 놓는 것을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다. 당시에는 "산의 아주 작은 부분만 관광으로 활용하고 나머지는 산악인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답했다. 지금도 거의 같은 논리지만, 약간은 어구가 달라졌다.
"제 고향에는 케이블카가 이미 수백 개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걸 설치하는 장소의 특성이 관건이니 민주적으로 상의해서 결정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1개를 놓을지, 10개를 놓을지, 아니면 아예 안 할지 말이죠. 무조건 산에 케이블카 놓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깔끔하게 사람을 산 위로 올려 보내주죠. 장애가 있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산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큰 도움을 줍니다. 케이블카가 있어 관광하기 좋은 산이나, 케이블카가 없어 등반하기 좋은 산이나 둘 다 좋은 겁니다. 다만 명확한 구분은 필요해요. 케이블카는 분명 모험할 기회를 파괴합니다. 관광이 있는 산에선 모험을 할 수 없고, 모험을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 산에는 관광객의 접근을 통제해야 합니다."
그는 모든 질문에 거침없이 답했다. 그의 등반기나 영상을 봐도 그렇다. 그는 등반이 당연히 위험하고 죽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전혀 위험하지 않고 죽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처럼 산을 오른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등반할 때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타입인가요? 아니면 특별한 마인드컨트롤 방법이 있는 겁니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포라는 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용기의 다른 면이죠. 중요한 건 밸런스입니다. 두 감정이 정확히 맞춰져야 모험을 할 수 있어요. 만약 두려움이 더 크다면 작은 산으로 가야죠. 또 반대로 용기만 너무 크다면 만용의 대가를 치를 공산이 큰 것이고요.
저 역시 두려움이 더 컸던 모험이 있었습니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결국 설맹에 걸려 크게 위험할 뻔 했죠.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엄청난 공포심에 휩싸였었습니다. 그나마 근처에 다른 대원들이 있어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었죠. 두려움과 용기를 모두 정확히 가져야 훌륭한 알피니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 이전글밍키넷: 해외 성인 컨텐츠 제공 사이트와 국내 법적 이슈 밍키넷 막힘 25.11.14
- 다음글바다이야기란 무엇인가? 2025년 유저들이 다시 찾는 이유와 게임의 매력 분석 25.11.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