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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뉴시스


미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2일 장중 1470원을 기록하며 15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 환율은 1465.7원에 오후 3시 30분 주간 거래를 마쳤다. 지난 4월 이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미·중 관세 전쟁 우려가 절정이던 지난 4월 9일 원화 환율은 장중 1487.6원까지 치솟기도 했지만, 5월 중순 들어 1300원대 후반으로 내려왔다. 그러다 9월 말 대미 관세 협상 불확실성 탓에 1400원대로 올랐고, 10월 한 달간 24.4원(오후 3시 30분 기준)이 오르는 등 급격히 치솟았다. 이후 한·미 관세 협상 합의에도 원화 환율은 이달 들어서만 12일까지 7거래일 만에 36.9원 올랐다(원화 가치 하락).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뚫었음은 물론이고 글로벌 금융 위기가 고조됐던 2008~2009년 수준인 1500원 선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주식을 사들이는 서학개미들과 수입업체 결제 수요 등 견고한 달러 실수요가 원화 가치를 누르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환율 떠받치는 서학개미들
12일 한국예탁결제원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이달 들어 11일까지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 자는 국내 주식을 7조6923억원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서학개미는 미국 주식을 23억240만달러(약 3조3780억원) 순매수했다. 주식 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시계를 넓혀 올해 1월부터 지난 11일까지 추세를 봐도 외국인이 우리나라 주식을 5조6533억원 순매수했지만, 서학개미들이 미국 주식을 순 매수한 규모는 269억5739만달러(약 39조5168억원)에 달한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서학개미들이 원화를 달러로 바꿔 해외 주식을 사들이는 구조적 취약성이 최근 부각되고 있다”며 “수출 기업들이 환율이 더 오를 거라는 기대와 향후 대미 투자에서 현금 확보 등의 이유로 달러 물량을 풀지 않고 있다”고 했다.
AI주 거품 우려에도 서학개미들이 ‘저가 매수’에 나서며 당분간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달 들어 지난 11일까지 서학개미들이 사들인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 중 약 80%가 메타·SOXL(미 반도체 지수 수익률의 3배 추종)·엔비디아·METU(미 메타 주가 수익률의 2배 추종)·팔란티어 등 미국 AI 수혜주 ‘톱5’에 몰려 있다.
국내외 주식 시장에 투자 중인 직장인 윤모(38)씨는 “국장은 오를 만큼 올랐다고 보고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차익 실현을 했다”며 “미국 주식은 우상향할 것이라는 믿음에 월급날마다 일정액을 꾸준히 사고 있다”고 했다.
◇달러 벌어와도 환전 않는 기업들
우리 기업이 무역수지 흑자로 달러를 벌어들여와도 시장에 충분히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도 원화 가치가 떨어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 10월 한 달간 서학개미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역대 최대 수준인 68억5000만달러로, 같은 기간 무역수지 흑자 규모(60억5000만달러)를 웃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환율이 계속 오르고 있다보니 무역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 물량이 시장에 풀리지 않고 있다”며 “일 평균으로 봐도 서학개미가 9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하루 3억달러를 순매수했다면, 한국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2억8000만달러 규모”라고 했다. 여기에 달러로 결제하는 수입 업체들도 환율이 더 오르기 전에 달러를 매수하려는 수요가 강해지고 있다.
한 수출업자는 “과거 달러로 결제 대금을 받아 90%를 원화로 환전했다면, 요즘은 절반도 바꾸지 않는다”며 “달러를 들고 있다가 환율이 더 오르면 팔 생각”이라고 했다.
이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외환시장이 불확실성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당국은 과도한 변동성이 발생할 경우 시장에 개입할 의지가 있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사실상의 구두 개입성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