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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 부처 회의서 '귀순 원칙적 허용' 결론예산 등 대책 마련 위해 2차 회의 열기로北 "노동자 없어진다면 상응 조치 취할 것"
는 1994년 러시아 내에서 발생한 북한 벌목 노동자들의 귀순과 정부의 대책 마련 과정을 당시 작성된 외교 전문으로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1/25/THEFACT/20260125000146717nqrz.jpg" data-org-width="640" dmcf-mid="zqPMVoQ9kQ" dmcf-mtype=" 사이다쿨접속방법 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1/25/THEFACT/20260125000146717nqrz.jpg" width="658">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야마토게임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94년 러시아 내에서 발생한 북한 벌목 노동자들의 귀순과 정부의 대책 마련 과정을 당시 작성된 외교 전문으로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릴게임신천지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오리지널골드몽
☞1편에 이어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정부는 러시아 하바롭스크 인근 2만여 명의 북한 벌목 노동자 가운데 170여 명이 작업장에서 탈출했다고 추산했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등에 80~90여 명, 중국에는 80~90여 명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현지 공관에 도움을 요청한 사례도 속속 늘어났다. 주러시아 대사관에는 40~ 골드몽릴게임릴게임 50명, 주카자흐스탄 대사관에는 8명, 주우즈베키스탄 대사관에는 5명이 찾아왔다.
특히 탈출 노동자 가운데 3명은 항공과 선박을 이용해 국내로 들어왔는데, 이를 계기로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에 '북한 벌목 노동자 인권 문제 대책 소위'가 설치되기도 했다. 정부가 조용히 물밑에서 처리하기에는 해당 사안이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한 셈이다. 이에 정부는 1994년 4월 1일 외무부(외교부) 차관 주재로 관계 부처 회의에 나섰다.
참석 부처는 외무부를 비롯해 청와대, 총리실, 통일원(통일부), 경제기획원(재정경제부), 법무부,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 안기부, 경찰청 등 9개 부처였다. 정부는 논의 끝에 '인도주의와 헌법정신에 따라 북한 벌목 노동자들이 희망하는 경우 국내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의문을 도출했다.
정부는 1994년 4월 1일 외무차관 주재로 관계 부처 회의를 열고 탈출 노동자들의 국내 귀순을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예산 등 세부 대책 검토를 위해 2차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외교부
회의 과정을 살펴보면 정부는 북한 주민의 국내법적 지위가 헌법상 보장된다고 봤다. 먼저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 헌법 제2조는 대한민국의 국민 요건을 법률(국적법)로 정하도록 했는데, 북한 주민을 명시한 규정은 없지만 남북 분단이라는 역사적 경과에서 이를 다룬 절차, 즉 경과 규정도 없기에 입법 기술상의 '누락'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제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1928년 상설국제사법재판소(PCIJ)는 '어떤 개인이 어떤 국가에 속하는가 하는 국적상의 지위는 그 국가의 국내법만이 기초가 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특히 분단국의 경우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귀순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관례도 정부의 판단 근거가 됐다.
이에 따라 부처별 역할이 부여됐다. 외무부는 탈출 노동자들의 국내 입국까지의 외교적 교섭을 맡기로 했다. 이들의 국내 정착에 드는 예산과 현지 정착 소요 예산은 경제기획원이 확보하기로 했다. 해당 국내외 예산의 집행권은 보건사회부와 외무부에 각각 내려졌다.
다만 러시아 벌목장을 탈출한 노동자 추산 규모만 170여 명인 데다, 그 수가 더 늘어날 수 있어 국내 수용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일례로 귀순 북한 동포 보호법상 1인당 지원 비용은 4500만 원(정착비 1500만 원, 주택비 3000만 원)으로 170명일 경우 76억 원이 필요했다. 반면 집행 기관인 보건사회부의 관련 예산은 12억 원에 불과했다.
1차 관계 부처 회의록 일부. 당시 통일원은 탈출 노동자들의 귀순 문제를 통일 과정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또 현지 정착을 원하는 탈출 노동자의 경우, 한러 합작 공장을 설치해 이들의 취업을 도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외교부
경찰 인력 문제도 있었다. 당시 귀순자들은 2년 정도 경찰의 보호 감호를 받았는데, 이들이 대폭 증가할 경우 기존 인력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범죄를 저지른 귀순자의 수용 문제도 제기됐다. 실제로 국내로 입국한 탈출 노동자 중 1명은 벌목장에서 동료를 칼로 찌른 뒤 도주한 것으로 추후 밝혀졌다. 이에 정부는 원칙적으로 탈출 노동자들의 귀순을 허용하되, 대책 검토를 위해 2차 관계 부처 회의를 열기로 했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북한은 1994년 4월 9일 임업부 대변인 담화를 내고 즉각 반발했다. 북한은 "남조선 당국자들이 원동 지방에서 정상적인 벌목 작업을 하고 있는 우리 노동자들의 인권을 감히 모독하면서 조사단 파견이니, 귀순 공작이니 하고 소동을 벌이는 것은 극한 상황으로 끌고 가고 있는 오늘의 남북 대결을 해외까지 확대해 보다 엄중한 민족적 반목을 조성하고 날로 높아가는 우리 공화국의 권위와 일심단결의 위력을 훼손시켜 보려는 또 하나의 계획적인 민족 반역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앞으로 원동 지방에 가 있는 우리 벌목 노동자 몇몇이 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자들에게 있으며 그들이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서 우리 노동자들을 납치해 간 것으로 인정하고 즉시 그에 상응한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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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이어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정부는 러시아 하바롭스크 인근 2만여 명의 북한 벌목 노동자 가운데 170여 명이 작업장에서 탈출했다고 추산했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등에 80~90여 명, 중국에는 80~90여 명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현지 공관에 도움을 요청한 사례도 속속 늘어났다. 주러시아 대사관에는 40~ 골드몽릴게임릴게임 50명, 주카자흐스탄 대사관에는 8명, 주우즈베키스탄 대사관에는 5명이 찾아왔다.
특히 탈출 노동자 가운데 3명은 항공과 선박을 이용해 국내로 들어왔는데, 이를 계기로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에 '북한 벌목 노동자 인권 문제 대책 소위'가 설치되기도 했다. 정부가 조용히 물밑에서 처리하기에는 해당 사안이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한 셈이다. 이에 정부는 1994년 4월 1일 외무부(외교부) 차관 주재로 관계 부처 회의에 나섰다.
참석 부처는 외무부를 비롯해 청와대, 총리실, 통일원(통일부), 경제기획원(재정경제부), 법무부,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 안기부, 경찰청 등 9개 부처였다. 정부는 논의 끝에 '인도주의와 헌법정신에 따라 북한 벌목 노동자들이 희망하는 경우 국내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합의문을 도출했다.
정부는 1994년 4월 1일 외무차관 주재로 관계 부처 회의를 열고 탈출 노동자들의 국내 귀순을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예산 등 세부 대책 검토를 위해 2차 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외교부
회의 과정을 살펴보면 정부는 북한 주민의 국내법적 지위가 헌법상 보장된다고 봤다. 먼저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 헌법 제2조는 대한민국의 국민 요건을 법률(국적법)로 정하도록 했는데, 북한 주민을 명시한 규정은 없지만 남북 분단이라는 역사적 경과에서 이를 다룬 절차, 즉 경과 규정도 없기에 입법 기술상의 '누락'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국제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1928년 상설국제사법재판소(PCIJ)는 '어떤 개인이 어떤 국가에 속하는가 하는 국적상의 지위는 그 국가의 국내법만이 기초가 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특히 분단국의 경우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귀순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관례도 정부의 판단 근거가 됐다.
이에 따라 부처별 역할이 부여됐다. 외무부는 탈출 노동자들의 국내 입국까지의 외교적 교섭을 맡기로 했다. 이들의 국내 정착에 드는 예산과 현지 정착 소요 예산은 경제기획원이 확보하기로 했다. 해당 국내외 예산의 집행권은 보건사회부와 외무부에 각각 내려졌다.
다만 러시아 벌목장을 탈출한 노동자 추산 규모만 170여 명인 데다, 그 수가 더 늘어날 수 있어 국내 수용이 쉽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일례로 귀순 북한 동포 보호법상 1인당 지원 비용은 4500만 원(정착비 1500만 원, 주택비 3000만 원)으로 170명일 경우 76억 원이 필요했다. 반면 집행 기관인 보건사회부의 관련 예산은 12억 원에 불과했다.
1차 관계 부처 회의록 일부. 당시 통일원은 탈출 노동자들의 귀순 문제를 통일 과정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또 현지 정착을 원하는 탈출 노동자의 경우, 한러 합작 공장을 설치해 이들의 취업을 도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외교부
경찰 인력 문제도 있었다. 당시 귀순자들은 2년 정도 경찰의 보호 감호를 받았는데, 이들이 대폭 증가할 경우 기존 인력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범죄를 저지른 귀순자의 수용 문제도 제기됐다. 실제로 국내로 입국한 탈출 노동자 중 1명은 벌목장에서 동료를 칼로 찌른 뒤 도주한 것으로 추후 밝혀졌다. 이에 정부는 원칙적으로 탈출 노동자들의 귀순을 허용하되, 대책 검토를 위해 2차 관계 부처 회의를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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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우리는 앞으로 원동 지방에 가 있는 우리 벌목 노동자 몇몇이 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자들에게 있으며 그들이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서 우리 노동자들을 납치해 간 것으로 인정하고 즉시 그에 상응한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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