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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이곳에선 소나무도 키가 작다. 거칠고 모진 바람 때문이다. 먼바다에서 불어온, 이 땅의 터줏대감이다. 세찬 바람에 돌멩이마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저 몸을 낮추고, 신령스러운 산방산만 거뭇하게 솟아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사람들도 바람에 순종한다. 만고풍상을 온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땅이니, 겸손하게 웅크려 고갤 숙인다. 하지만 결코 쓰러진 적은 없었다. '대정 몽생이'라 했다. 거친 땅에서 자라나, 키가 작고 몸집이 다부졌다. 산방산을 때리는 바람이 거셀수록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 몽생이도 돌멩이처럼 단단해져 갔다.
▲ 산방산 대정읍성 골목에서 바라 본 산방산. 신령스러운 바다이야기합법 자태가 도드라져 보인다.
ⓒ 이영천
1월 중순, 제주의 돌로 쌓은 낮은 읍성이 마을을 둥우리처럼 감쌌다. 뭍의 위력이 성벽을 흔들어 댈 때마다, 몽생이 포부도 야무지게 다져졌다. 격랑에 오션릴게임 휩쓸려 읍성에 회오리가 일면, 대정의 기개가 당당한 돌멩이처럼 살아났다.
바다의 거친 숨결이 도타운 성벽을 쓰다듬는다. 소금기 밴 바람은 오름을 감싸며 돌고, 키 작은 소나무는 한껏 가지를 살찌운다. 세찬 비바람이 성벽에 부딪는다. 그렇게 바다와 비바람, 소나무와 성벽이 어우러져 대정의 풍경을 빚 릴게임가입머니 어냈다. 몽생이 시간도 읍성처럼 단단하게 쌓여갔다.
▲ 대정(1872년_지방지도) 한라산을 중심에 두고, 제주의 남서쪽을 관장하던 대정현의 모습. 산과 물줄기, 길이 간결하게 표현되었다. 대정읍성도 네모에 객사와 관아만 그려 넣었다.
ⓒ 서울대학교_규장각_한국학연구원
낮은 성벽의 돌 틈마다 손끝이 닿았다. 성벽을 무시로 넘나드는 바람이, 땅에 삶의 무늬를 아로새겼다. 바람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난 돌도 둥글게 깎아냈다. 세찬 격랑에 누운 풀도 다시 일어서고, 몽생이는 그걸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냈다. 모진 풍상이 오래도록 깃든 곳, 이곳은 바로 바람의 땅이다.
바람의 땅
제주의 바람은 자연뿐 아니라 시대마다 변화를 끌어낸 하나의 흐름이었다. 제아무리 바람이 드세다 해도, 이는 제주 것이지 결코 뭍의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제주의 흙과 물, 바람만이 키가 작을망정 소나무를 키워냈다. 숙명이다. 제아무리 한양에서 버린 땅이라 해도, 제주엔 제주만의 염원이 깃드는 법이다.
▲ 대정읍성 그리 높지 않은 성벽을, 검은 화산석으로 두텁게 쌓았다. 정갈하게 단장된 성벽이 '몽생이'의 대정을 웅변하는 것만 같다.
ⓒ 이영천
제주의 바람은 냉철하면서도 따뜻했다. 몽생이 생각을 키워낸 게 읍성 돌멩이다. 너른 품의 바다와 포근한 햇살에, 마을은 졸음에 빠졌다. 평화의 시대다. 그러나 성난 바다가 바닥까지 뒤집어엎을 때도 있었다. 검은 회오리로 밀려드는 반동의 시대다. 그때마다 읍성에 펄럭이던 帥(수) 깃발이 꺾이곤 했다. 그렇듯 대정의 나날은 오로지 바람만이 열어젖힐 수 있었다.
나라가 풍전등화에 내놓인 신축년이던가. 세금이란 회오리가 먼저 불어 닥친다. 뒤이어 서양 신앙이 광풍으로 얹혀 겹치자, 몽생이 외침이 폭풍으로 휘돌아 나간다. 가톨릭 신자와 봉세관 사이의 갈등이 쌓여가던 1901년, 치켜뜬 눈의 이재수가 그 격랑 속에서 우뚝 일어섰다.
모진 광풍이 몽생이 분노를 부채질했고, 울분은 이내 자주를 외치며 피를 뿌렸다. 이재수는 당당했다. 체구는 작았지만, 그의 분노와 기개는 산방산도 뒤덮을 만큼 거세게 휘돌아 나갔다. 그 외침은 또한 평등의 요구였으며, 동시에 억압에 맞선 몽생이의 몸부림이었다.
▲ 제주대정삼의사비 대정읍성 동문 곁에 '제주대정삼의사비'다. 이재수, 강우백, 오대현의 삼의사를 기리는 비석으로, 신축년 소위 '이재수의 난' 때 희생되신 분들이다.
ⓒ 이영천
이재수는 포박되어 끝내 목숨을 잃었지만, 그가 일으킨 회오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산방산을 뒤덮었던 당당한 외침이 읍성 돌 틈에 스며, 여태껏 날카로운 눈을 치켜뜨고 있다. 이것이 제주의 바람이자, 바람의 땅에 사는 몽생이의 오랜 염원이다. 동문 밖, 그 옆 검은 돌에 신축년을 기리는 '제주대정삼의사비'가 의연하다.
오롯하고 곧은 바람에도 불구하고, 뭍의 권력은 늘 이 땅을 '버려진 땅'으로 취급했다. 그런 취급을 받아온 대정은, 누구에게는 끝이었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시작이었다. 뭍의 권력이 갖다버린 바람의 땅에, 유배의 행렬이 늘 줄을 이었다.
유배지의 절의와 예술
궁벽했으니, 권력의 시야에서 떼어내 가둬 놓기에 적합한 땅이었다. 모진 바람에 토양마저 척박해 근근이 연명할 수밖에 없으니, 얼마나 고소원(固所願)이었을까.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분명한 무엇이 있었다. 모진 바람만큼이나, 기온도 인심도 따뜻한 고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정온(鄭蘊)은 '제주 5현'에 들 만큼 높은 인품을 갖췄다. 추사는 불후의 명작 '세한도'를 남겼다. 그들은 떠났어도 바람길마저 바뀐 건 아니다. 절의와 예술, 고독과 병마의 시간이 모두 그 바람을 타고 읍성 곳곳에 배어있다. 그들을 잇는 후학이 자라났다. 그들은 어전(御前)의 불빛에서 쫓겨왔지만, 몽생이 속에서 다시 자신을 밝혔다.
▲ 동계정선생유허비 대정읍성 안 초등학교 교정에 서 있는, 동계 정온 선생을 기리는 비석이다. 동계 정온은 '제주 오현' 중 한 분이다.
ⓒ 이영천
따뜻한 정온의 시선이 오상고절로 남았다. 광해군의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대정으로 유배된 그는, 바람을 벗 삼아 10년을 버텼다. 절의는 고독 속에서 더 단단해졌다. 몽생이를 닮아 갔다.
그는 바람에서 침묵을 깨달았고, 뜻은 고요 속에서 더욱 빛났다. 그는 바람을 벗이라 불렀고, 대정의 바람 속에서 스스로 다시 단단해졌다. 병자호란의 치욕에 자결마저 실패한다. 주전파였다. 거창으로 낙향해 한적한 골짝에 자신을 낮춘 작은 집 '모리재(某里齋)'를 짓고 만년을 살아낸다. 고고한 충절이 가을 국화보다 더 곱다.
그로부터 200년 뒤, 또 다른 누군가 이곳에 온다. 추사다. 세속의 권력에서 밀려난 학자이자 예술가, 무엇에도 당당했던 그의 낭패가 오죽했을까. 대정의 차가운 바람에서 <세한도>를 건져낸다. 척박한 땅과 모진 바람, 쓸쓸한 고독이 가져다준 선물이었을까.
▲ 추사와 초의선사 대정읍성 안에 재현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배지에, 차(茶)를 들고 찾았음직 한 초의선사와 선생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 이영천
벗은 멀리 있어 오지 못했고, 세상은 냉담하기만 했다. 책도, 차(茶)도, 음식도 모두 결핍뿐이다. 그토록 절절한 깊은 고독이, 예술의 품격으로 피어났다. '세한연후(歲寒然後)에 송백지후조(松柏知後彫)'라 했던가. 추사는 맵찬 겨울바람에 인간의 품격을 높이 새겼다.
▲ 세한도 척박한 대정 땅엔 벗도, 책도, 음식도 시원치 않았다. 잔병에 시달리는 스승에게 제자 이상적만이 중국에서 책을 구해 오는 등 세심하게 살폈다. 그 고마움으로 탄생한 게 '세한도'다.
ⓒ 국립중앙박물관
두 사람의 세대는 달랐으나, 모진 바람은 다르지 않았다. 정온은 절의를 남겼고, 추사는 선배가 남긴 절의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들이 대정을 뒤로하고 뭍으로 갔어도, 모진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절의와 예술, 고독과 병마의 시간이 모두 그 바람을 타고 읍성 곳곳에 스며들었다.
유배는 결코 유폐에 이르지는 못했다. 고독의 벽을 넘어선 이들의 사유가 읍성에 깊이 깃들어 지금까지 흐르고 있다. 성벽은 말이 없으나 '휘~이' 부는 바람이 그들의 생각과 뜻을 싣고서 온 세상에 퍼뜨리고 있다.
돌과 바람의 성곽 그리고 추사관
검은 화산석으로 반듯한, 그리 높지 않은 각진 성곽이 정연해 단정하다. 검은 돌들이 묵상하듯 고요하다. 그 고요야말로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그럼에도 문이 섰던 곳의 성곽이 아슬아슬하다. 동·서·남문에 있었다는 문루는 흔적도 없다. 다만 생경하게 복원되었던 북문이 다시 사라졌다. '탐라순력도'엔 북문은 없다. 제주에 유배 온 청음 김상헌이 기록한 글에 북문이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근거는 미약하다.
3대 문을 지켰던 돌하르방도 한쪽으로 밀려났다. '대정 고을'을 상징하는 돌하르방이 2018년에야 자기 자리를 겨우 되찾았다. 그랬으니, 문루가 사라졌다 해서 너무 설워하지는 말자. 더구나 객사를 탐할 것인가, 아니면 관아와 내아가 남았기를 바라겠는가. 모진 비바람에 최대로 자세를 낮춘 올망졸망한 집들로 만족하자. 모슬포가 아닌 '모질포'라는 비아냥이 대수랴. 돌도 깎아낸다는 비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 추사 유배지 대정읍성 추사 선생이 유배를 살았던 곳에, 당시 가옥을 재현하였다.
ⓒ 이영천
추사가 유배를 견뎌냈다는 옛집이 복원되었다. 언제건 사라진 집을, 그 자리에 재현해냈으니 분명 제주의 집이다. 작은 고마움이다. 그 옆에 추사를 기억하려는 집 '추사관'이 소슬하다. 세한도 속 둥근 창문의 집을 건축적으로 재해석했다는데, 내 눈엔 글쎄다. 서울에 있는 붉은 벽돌의 석파랑 둥근 창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 추사관 내부의 기능적 배치를 논외로 하고, 외관만 보아서는 세한도 속 둥근 창문을 가진 고졸한 가옥이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 이영천
향기로운 차를 가져온 초의선사가 저 집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그림을 배우러 오던 소치 허련이 발길을 돌리지 않을까. 중국에서 귀한 서적을 등에 메고 스승을 찾아오던 이상적의 고된 발길을, 저 집이 제대로 달래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석파랑 일본에서 세한도를 찾아 온 소전 손재형 선생이 사저로 옮겨 온 '석파랑'. 본래 흥선대원군 별서로 알려진 '석파정'에 딸린 건물이었다. 추사 선생이 석파정에서 이 건물을 자주 애용했다고 한다.
ⓒ 이영천
그렇다고 탐라순력도 속 옛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모진 바람에 거친 음식, 찬 잠자리를 견뎌낸 오상고절의 절개라도 제모습으로 드러내자는 것이다. 그로써 읍성은 단단해지고, 산방산은 더 고고해지지 않겠는가.
이곳은 소나무마저 키가 작다. 그러나 그 바람 속에서 지켜낸 정신만은, 신령스러운 산방산의 키보다 더 드높다. 세한연후에야 그 푸르름을 안다고 했다. 바람이 대정을 몽생이로 깎아냈을지라도, 대정의 바람이라야 올곧았던 그 길을 기억해낼 것이다. 세월이 지운 문루나 성벽보다 더 튼실한 것은, 바람 속에 남은 작지만 단단한 기억이다.
[이영천 기자]
이곳에선 소나무도 키가 작다. 거칠고 모진 바람 때문이다. 먼바다에서 불어온, 이 땅의 터줏대감이다. 세찬 바람에 돌멩이마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저 몸을 낮추고, 신령스러운 산방산만 거뭇하게 솟아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사람들도 바람에 순종한다. 만고풍상을 온몸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땅이니, 겸손하게 웅크려 고갤 숙인다. 하지만 결코 쓰러진 적은 없었다. '대정 몽생이'라 했다. 거친 땅에서 자라나, 키가 작고 몸집이 다부졌다. 산방산을 때리는 바람이 거셀수록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 몽생이도 돌멩이처럼 단단해져 갔다.
▲ 산방산 대정읍성 골목에서 바라 본 산방산. 신령스러운 바다이야기합법 자태가 도드라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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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중순, 제주의 돌로 쌓은 낮은 읍성이 마을을 둥우리처럼 감쌌다. 뭍의 위력이 성벽을 흔들어 댈 때마다, 몽생이 포부도 야무지게 다져졌다. 격랑에 오션릴게임 휩쓸려 읍성에 회오리가 일면, 대정의 기개가 당당한 돌멩이처럼 살아났다.
바다의 거친 숨결이 도타운 성벽을 쓰다듬는다. 소금기 밴 바람은 오름을 감싸며 돌고, 키 작은 소나무는 한껏 가지를 살찌운다. 세찬 비바람이 성벽에 부딪는다. 그렇게 바다와 비바람, 소나무와 성벽이 어우러져 대정의 풍경을 빚 릴게임가입머니 어냈다. 몽생이 시간도 읍성처럼 단단하게 쌓여갔다.
▲ 대정(1872년_지방지도) 한라산을 중심에 두고, 제주의 남서쪽을 관장하던 대정현의 모습. 산과 물줄기, 길이 간결하게 표현되었다. 대정읍성도 네모에 객사와 관아만 그려 넣었다.
ⓒ 서울대학교_규장각_한국학연구원
낮은 성벽의 돌 틈마다 손끝이 닿았다. 성벽을 무시로 넘나드는 바람이, 땅에 삶의 무늬를 아로새겼다. 바람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난 돌도 둥글게 깎아냈다. 세찬 격랑에 누운 풀도 다시 일어서고, 몽생이는 그걸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냈다. 모진 풍상이 오래도록 깃든 곳, 이곳은 바로 바람의 땅이다.
바람의 땅
제주의 바람은 자연뿐 아니라 시대마다 변화를 끌어낸 하나의 흐름이었다. 제아무리 바람이 드세다 해도, 이는 제주 것이지 결코 뭍의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제주의 흙과 물, 바람만이 키가 작을망정 소나무를 키워냈다. 숙명이다. 제아무리 한양에서 버린 땅이라 해도, 제주엔 제주만의 염원이 깃드는 법이다.
▲ 대정읍성 그리 높지 않은 성벽을, 검은 화산석으로 두텁게 쌓았다. 정갈하게 단장된 성벽이 '몽생이'의 대정을 웅변하는 것만 같다.
ⓒ 이영천
제주의 바람은 냉철하면서도 따뜻했다. 몽생이 생각을 키워낸 게 읍성 돌멩이다. 너른 품의 바다와 포근한 햇살에, 마을은 졸음에 빠졌다. 평화의 시대다. 그러나 성난 바다가 바닥까지 뒤집어엎을 때도 있었다. 검은 회오리로 밀려드는 반동의 시대다. 그때마다 읍성에 펄럭이던 帥(수) 깃발이 꺾이곤 했다. 그렇듯 대정의 나날은 오로지 바람만이 열어젖힐 수 있었다.
나라가 풍전등화에 내놓인 신축년이던가. 세금이란 회오리가 먼저 불어 닥친다. 뒤이어 서양 신앙이 광풍으로 얹혀 겹치자, 몽생이 외침이 폭풍으로 휘돌아 나간다. 가톨릭 신자와 봉세관 사이의 갈등이 쌓여가던 1901년, 치켜뜬 눈의 이재수가 그 격랑 속에서 우뚝 일어섰다.
모진 광풍이 몽생이 분노를 부채질했고, 울분은 이내 자주를 외치며 피를 뿌렸다. 이재수는 당당했다. 체구는 작았지만, 그의 분노와 기개는 산방산도 뒤덮을 만큼 거세게 휘돌아 나갔다. 그 외침은 또한 평등의 요구였으며, 동시에 억압에 맞선 몽생이의 몸부림이었다.
▲ 제주대정삼의사비 대정읍성 동문 곁에 '제주대정삼의사비'다. 이재수, 강우백, 오대현의 삼의사를 기리는 비석으로, 신축년 소위 '이재수의 난' 때 희생되신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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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수는 포박되어 끝내 목숨을 잃었지만, 그가 일으킨 회오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산방산을 뒤덮었던 당당한 외침이 읍성 돌 틈에 스며, 여태껏 날카로운 눈을 치켜뜨고 있다. 이것이 제주의 바람이자, 바람의 땅에 사는 몽생이의 오랜 염원이다. 동문 밖, 그 옆 검은 돌에 신축년을 기리는 '제주대정삼의사비'가 의연하다.
오롯하고 곧은 바람에도 불구하고, 뭍의 권력은 늘 이 땅을 '버려진 땅'으로 취급했다. 그런 취급을 받아온 대정은, 누구에게는 끝이었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시작이었다. 뭍의 권력이 갖다버린 바람의 땅에, 유배의 행렬이 늘 줄을 이었다.
유배지의 절의와 예술
궁벽했으니, 권력의 시야에서 떼어내 가둬 놓기에 적합한 땅이었다. 모진 바람에 토양마저 척박해 근근이 연명할 수밖에 없으니, 얼마나 고소원(固所願)이었을까.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분명한 무엇이 있었다. 모진 바람만큼이나, 기온도 인심도 따뜻한 고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정온(鄭蘊)은 '제주 5현'에 들 만큼 높은 인품을 갖췄다. 추사는 불후의 명작 '세한도'를 남겼다. 그들은 떠났어도 바람길마저 바뀐 건 아니다. 절의와 예술, 고독과 병마의 시간이 모두 그 바람을 타고 읍성 곳곳에 배어있다. 그들을 잇는 후학이 자라났다. 그들은 어전(御前)의 불빛에서 쫓겨왔지만, 몽생이 속에서 다시 자신을 밝혔다.
▲ 동계정선생유허비 대정읍성 안 초등학교 교정에 서 있는, 동계 정온 선생을 기리는 비석이다. 동계 정온은 '제주 오현' 중 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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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정온의 시선이 오상고절로 남았다. 광해군의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대정으로 유배된 그는, 바람을 벗 삼아 10년을 버텼다. 절의는 고독 속에서 더 단단해졌다. 몽생이를 닮아 갔다.
그는 바람에서 침묵을 깨달았고, 뜻은 고요 속에서 더욱 빛났다. 그는 바람을 벗이라 불렀고, 대정의 바람 속에서 스스로 다시 단단해졌다. 병자호란의 치욕에 자결마저 실패한다. 주전파였다. 거창으로 낙향해 한적한 골짝에 자신을 낮춘 작은 집 '모리재(某里齋)'를 짓고 만년을 살아낸다. 고고한 충절이 가을 국화보다 더 곱다.
그로부터 200년 뒤, 또 다른 누군가 이곳에 온다. 추사다. 세속의 권력에서 밀려난 학자이자 예술가, 무엇에도 당당했던 그의 낭패가 오죽했을까. 대정의 차가운 바람에서 <세한도>를 건져낸다. 척박한 땅과 모진 바람, 쓸쓸한 고독이 가져다준 선물이었을까.
▲ 추사와 초의선사 대정읍성 안에 재현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배지에, 차(茶)를 들고 찾았음직 한 초의선사와 선생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 이영천
벗은 멀리 있어 오지 못했고, 세상은 냉담하기만 했다. 책도, 차(茶)도, 음식도 모두 결핍뿐이다. 그토록 절절한 깊은 고독이, 예술의 품격으로 피어났다. '세한연후(歲寒然後)에 송백지후조(松柏知後彫)'라 했던가. 추사는 맵찬 겨울바람에 인간의 품격을 높이 새겼다.
▲ 세한도 척박한 대정 땅엔 벗도, 책도, 음식도 시원치 않았다. 잔병에 시달리는 스승에게 제자 이상적만이 중국에서 책을 구해 오는 등 세심하게 살폈다. 그 고마움으로 탄생한 게 '세한도'다.
ⓒ 국립중앙박물관
두 사람의 세대는 달랐으나, 모진 바람은 다르지 않았다. 정온은 절의를 남겼고, 추사는 선배가 남긴 절의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들이 대정을 뒤로하고 뭍으로 갔어도, 모진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절의와 예술, 고독과 병마의 시간이 모두 그 바람을 타고 읍성 곳곳에 스며들었다.
유배는 결코 유폐에 이르지는 못했다. 고독의 벽을 넘어선 이들의 사유가 읍성에 깊이 깃들어 지금까지 흐르고 있다. 성벽은 말이 없으나 '휘~이' 부는 바람이 그들의 생각과 뜻을 싣고서 온 세상에 퍼뜨리고 있다.
돌과 바람의 성곽 그리고 추사관
검은 화산석으로 반듯한, 그리 높지 않은 각진 성곽이 정연해 단정하다. 검은 돌들이 묵상하듯 고요하다. 그 고요야말로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그럼에도 문이 섰던 곳의 성곽이 아슬아슬하다. 동·서·남문에 있었다는 문루는 흔적도 없다. 다만 생경하게 복원되었던 북문이 다시 사라졌다. '탐라순력도'엔 북문은 없다. 제주에 유배 온 청음 김상헌이 기록한 글에 북문이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근거는 미약하다.
3대 문을 지켰던 돌하르방도 한쪽으로 밀려났다. '대정 고을'을 상징하는 돌하르방이 2018년에야 자기 자리를 겨우 되찾았다. 그랬으니, 문루가 사라졌다 해서 너무 설워하지는 말자. 더구나 객사를 탐할 것인가, 아니면 관아와 내아가 남았기를 바라겠는가. 모진 비바람에 최대로 자세를 낮춘 올망졸망한 집들로 만족하자. 모슬포가 아닌 '모질포'라는 비아냥이 대수랴. 돌도 깎아낸다는 비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으니 말이다.
▲ 추사 유배지 대정읍성 추사 선생이 유배를 살았던 곳에, 당시 가옥을 재현하였다.
ⓒ 이영천
추사가 유배를 견뎌냈다는 옛집이 복원되었다. 언제건 사라진 집을, 그 자리에 재현해냈으니 분명 제주의 집이다. 작은 고마움이다. 그 옆에 추사를 기억하려는 집 '추사관'이 소슬하다. 세한도 속 둥근 창문의 집을 건축적으로 재해석했다는데, 내 눈엔 글쎄다. 서울에 있는 붉은 벽돌의 석파랑 둥근 창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 추사관 내부의 기능적 배치를 논외로 하고, 외관만 보아서는 세한도 속 둥근 창문을 가진 고졸한 가옥이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 이영천
향기로운 차를 가져온 초의선사가 저 집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그림을 배우러 오던 소치 허련이 발길을 돌리지 않을까. 중국에서 귀한 서적을 등에 메고 스승을 찾아오던 이상적의 고된 발길을, 저 집이 제대로 달래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석파랑 일본에서 세한도를 찾아 온 소전 손재형 선생이 사저로 옮겨 온 '석파랑'. 본래 흥선대원군 별서로 알려진 '석파정'에 딸린 건물이었다. 추사 선생이 석파정에서 이 건물을 자주 애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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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탐라순력도 속 옛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모진 바람에 거친 음식, 찬 잠자리를 견뎌낸 오상고절의 절개라도 제모습으로 드러내자는 것이다. 그로써 읍성은 단단해지고, 산방산은 더 고고해지지 않겠는가.
이곳은 소나무마저 키가 작다. 그러나 그 바람 속에서 지켜낸 정신만은, 신령스러운 산방산의 키보다 더 드높다. 세한연후에야 그 푸르름을 안다고 했다. 바람이 대정을 몽생이로 깎아냈을지라도, 대정의 바람이라야 올곧았던 그 길을 기억해낼 것이다. 세월이 지운 문루나 성벽보다 더 튼실한 것은, 바람 속에 남은 작지만 단단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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